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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획, 성공한 기획을 모색하다

기사승인 2023.01.12  11: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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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문화의 가벼움과 묵은 전통의 새로움 사이에서 -

   
▲ 가덕현 한국민예총 태안지부장

가덕현(한국민예총 태안지부장)

 지난해 11월. 유네스코가 태안유류피해극복기록물을 삼국유사(한국국학진흥원) 및 내방가사(국립한글박물관)와 함께 세계기록유산 아·태 지역 목록에 등재한 소식을 전했다. 우리나라 기록유산으로는 1997년 ‘훈민정음해례본’이 처음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후 22번째다. 인간에 의해 훼손된 엄청난 재난극복 과정의 기록이 인류가 영원히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기억해야 함을 유엔이 공식으로 인정한 결과다. 자칫 씻을 수 없는 재난으로 남겨질 뻔했던 태안군민의 아픔과 상처가 이제 우리나라 울타리를 넘어 인류공동체가 함께 보존해야 할 소중한 인간 정신의 승리로 기록한 것이다.
   동양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서해 바닷가의 변방 오지에 속한 지역. 파견된 관리조차 관직을 포기하고 돌아간 ‘사직고개’의 전설까지 남아있는 곳이기에 군사적 요충지가 되기도 한 고장이 바로 태안이다. 한반도 역사 변화에 큰 발자취를 남기진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수난의 과정에서 겪은 아픔과 고통을 더욱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태안은 고려, 조선을 거치며 해양 방어의 요충지였고, 탐관오리의 횡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굴하지 않았으며, 이유 없는 상처와 고통에 분노할 줄 알았기에 북접 내포 동학의 기포지가 될 수 있었다. 그 뿌리를 이어받은 이종일 지사가 국내 3.1 독립선언을 알리기에 앞장섰다. 문양목 선생은 해외 미주에서 도산 안창호와 함께 한인 연합 독립단체를 결성하고 스티븐슨을 처단했다. 그는 이승만과 의형제를 맺었으나 독립노선 차이로 결별한 박용만 지사와 더불어 항일 무장독립투쟁을 도모하기도 했다. 태안동학의 외침 일부는 태안문화예술곳간 ‘우리동네’(대표 가덕현) 극단이 뮤지컬 ‘횃불’로 제작하여 1,2차로 10여 회의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더욱 진지한 재창조의 과제가 남아있다.
   흔히 일컫는 말 중에,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란 문구가 있다. 하지만 태안은 아직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자기 몸부림 속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한류 문화’와 ‘K-POP’이 오대양 육대주를 돌아도 그 실상이 우리 피부에 크게 전해지지 않듯, 태안의 자기부정 또한 외면할 수 없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꿈틀거리지만, 지방자치기관조차 자신이 속한 문화에 대한 자존감의 빈곤에 놓여있진 않은가 의심스러울 때도 종종 있다. 이를 생각하면 ‘태안유류피해기록물’의 유네스코 등록은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우리 태안의 고통이 곧 세계인의 아픔과 깊숙이 연대하고 있다는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각인이기 때문이다. 이는 태안인의 생명력이 곧 세계인의 운명과 맞닿아 있다는 간증과도 같은 울림이자, 태안인이여 세계 인류의 외침에 귀 기울여 보라는 간절한 호소가 바로 ‘태안유류피해기록물’의 유네스코 등록이다. 이제 세계 인류가 공동으로 연대해야 할 증언인 ‘태안유류피해기록물’의 유네스코 등록 사건은 또 어떤 문화와 예술 양식으로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올 것인가.
   태안은 대대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삶을 이어온 대표적인 농·어촌 지역이다. 산업단지라고는 서부화력발전소 한 곳을 빼고는 변변한 시설물조차 거의 없다. 이는 오롯이 간직해온 자연환경을 삶의 터전으로 생명을 이어왔고 앞으로 살아갈 고장이란 의미다. 그렇기에 태안에서 자연과 생태환경은 목숨과도 같이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 지역이 엄청난 인재로 수천 년 이어온 삶의 역사를 한순간에 수십 년의 좌절과 맞바꿀 뻔했던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 우리의 생명력이 송두리째 뿌리 뽑힐 수도 있었던 환경재앙의 운명을 2~3년 만에 극복한 내력은 우리 태안의 자존심이자 국민 연대 정신과 협력의 승리가 아니던가.
   태안이 간직한 아픔은 기름유출사고와 같은 환경재앙만이 아니다. 저항할 수 없는 역사 환경에 갇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던 70년 전, 전쟁의 씻을 수 없는 눈물도 있다. 1950년 7월 이후 같은 해 12월까지 부역혐의자와 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된 1,200여 명의 태안민간인희생자유족(회장 정석희)의 아픔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2005년 5월에 통과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근거하여,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을 통해 비로소 그 전모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진실화해위 소속 구자환 영화감독의 손에 의해 제작된 다큐 영화 ‘태안’의 공동체 상영이 지난 2년간 태안군민과 중·고생 관람으로 이어졌다. 현재 영화 ‘태안’은 국가기록물로 지정하여 영구 보존물이 되었다. 이 수많은 아픔 중의 일부는 정낙추(전 문화원장) 님의 단편소설집, 「복자는 울지 않았다」 속의 단편 ‘죄인’이란 작품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영화와 소설이 된 태안의 아픔과 진실의 현장은 또 어떤 예술 장르가 되어 우리의 어깨를 쓰다듬어 줄 것인가.
   ‘예술은 아픔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빛나는 예술 작품일수록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처절한 고통과 아픔이 담겨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시대마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인류의 평화를 외치며 이념과 교류하고 때로는 정치와 공존했다 결별하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자신의 예술 작품 속에 인간의 진정한 숨소리를 담아내고자 몸부림하는 예술가들의 깊은 고뇌를 어찌 ‘순수’란 단어, 한 문장만으로 가벼이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미국의 가수이자 작곡가이면서 시인이었던 밥 딜런. 그는 1960~70년대 정치적이면서도 시적인 가사와 포크 음악으로 큰 반향을 불러온 인물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지만 끝내 수상을 거절한 사례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인 ‘바람만이 알고 있지’의 노랫말 중에, ‘… 얼마나 더 고개를 쳐들어야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닫게 될까. …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사람들은 자유로워질까. / 얼마나 더 고개를 돌리고 있어야 / 안 보이는 척할 수 있을까. / 친구여, /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 바람만이 알고 있지.’란 구절이 있다. 어떤가. 인류를 위해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노벨상 수상마저 거절한 사람, 한 예술인의 고뇌와 울부짖음이 가슴 절절하게 전해오지 않는가.
 지난 12월 22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제26회 대한민국청소년연극제 폐막식이 열렸다. 이 대회는 대한민국 청소년연극인들에게 꿈의 연극제로 통하는 행사로 대상 연극동아리에 국무총리상이 주어진다. 이번에 충남예화여고(예산) 연극동아리가 수상했다. 충남에서는 처음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눈여겨볼 점이 있다. 수상 학생들이 공연한 작품을 쓰고 연출하고 지도한 지도 강사가 바로 태안중학교, 태안고등학교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청운대 방송연기학과를 졸업한 김현진(27세) 연극강사란 사실이다. 그는 지난 8월 ‘예술의 전당’ 초대 공연작, ‘청년 윤봉길(38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 수상작)’의 주연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이기도 하며, 수년 동안 예산 ‘예촌극단’에서 활동하다 2021년부터 경기도립극단 소속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연기자이기도 하다. 태안에서 자라고 배운 많은 제자, 연극인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고향을 떠나 중앙 무대 주변을 전전할 때, 김현진 배우는 지방 극단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꿈을 키우고 기량을 닦아 비로소 훨훨 날개를 펼치고 있다. 태안은 그를 낳았지만 그를 기른 것은 태안이 아니다. 충남연극협회 이사이자 충남민예총 연극장르 분과장인 나는 그들이 이종일과 문양목, 채광석이 되어 태안의 공연무대 위에서 열연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태안은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그들을 언제까지 타향에 묶어둘 것인가.
   태안이 품고 있는 유·무형 문화유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아니 무궁무진하다. 온 바닷가와 들녘에 전통문화와 예술 재료가 널려있다. 오랜 시간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인 탓에 겨우 살아남은 신두리 사구가 있는 반면에 국제꽃박람회 때문에 사라진 꽃지 사구의 아이러니도 있다. 거북놀이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별주부 바위와 기념건물도 있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1978)의 ‘황도 붕기풍어제(충청남도무형문화제 12호)’도 있다. 다른 지방에선 이미 사라진 볏가리대놀이와 평민들의 안녕과 복을 기원했던 ‘설위설경’은 또 무엇인가. 천수만의 원형 보존과 가로림만의 오염만 아니었어도 어쩌면 태안의 갯벌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태안반도의 식물(천리포수목원)」에는 전국에서 거의 사라진 ‘검정방동사니’와 같은 풀꽃이 집단으로 서식하는 식생 환경도 있다. 한국의 다음 유네스코 등재를 준비 목록 중에는 ‘소금’도 포함되어 있다는데, 소금이라면 자염 재현 과정과 더불어 태안 또한 빠지지 않을 소재다.
   우리나라 축제와 문화제 현장은 이름도 희미한 트로트 가수와 허름한 원색의 포장마차 상인과 호객 소리로 붐빈다. 그들이 주인이다. 문화가 사라진 상인들의 축제 문화. 어쩌면 상인들만 남겨진, 주인이 없는 오늘날 우리 축제의 풍경이 참 촌스럽지 않은가. 잦아진 외국 여행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잘 알리라. 꽤 이름이 알려진 웬만한 외국의 축제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면, 혹은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같은 TV 여행 프로그램만 시청해도 금세 무릎을 칠 것이다. 진정한 축제의 의미가 무엇이고, 축제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축제와 예술제의 주인은 그것을 준비하고 즐기는 주민 자신이 아니던가. 자기 삶을 즐기기 위해 축제와 예술제를 만드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의 문화 속에 동참하고 싶어 그곳을 찾아간다. 그리고 함께 즐기며 기꺼이 소비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상업적 거래만을 부추기는 축제. 낮선 문화의 가벼움에 익숙하고 묵은 전통의 새로움을 외면하는 문화제, 예술제에 너무 취해 있진 않은지. 
 소중한 것은 언제나 까다로우며, 얼마간의 여유와 시간을 그리워한다.

가덕현 taea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태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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