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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안흥진의 시문학<1>

기사승인 2022.08.11  16: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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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본 안흥진의 풍경

글/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진호신

안흥진이 있었던 충청도 안흥량 일대 해안은 전라도와 경기도의 연안항로 중간에 위치하여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곡식을 운반하는 조운선이 통과하는 곳이었다. 안흥진의 북쪽으로는 수도였던 개경과 한양이 위치하고 남쪽으로는 물자가 풍부한 남부지방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안흥진은 오랫동안 군사적 요충이자 뱃사람들의 중간 기착지로 기능하였다. 신진분교에서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절벽 정상에는 능허대(凌虛臺) 터가 있다. 능허대는 능허추월(凌虛秋月)이라 하여 안흥팔경(安興八景) 중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경치가 뛰어나고 안흥량이 한눈에 들어와 예로부터 문학과 풍류를 아는 사람들과 선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시를 지었다. 이와 같이 안흥팔경은 안개가 많고 경치가 아름다운 안흥진을 찾는 문객들의 주요 시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1경 三島蜃樓 장마철 아련히 보이는 신기루 같은 삼도의 모습

2경 曲巖落照 안흥량 사자바위 지평선에 떨어지는 석양 노을

3경 串汀歸帆 만선을 이루고 관장목으로 돌아오는 범선

4경 長沙白鷗 신진도 긴 백사장에 앉아있는 흰 갈매기

5경 凌虛秋月 능허대 위를 비추는 가을 달빛

6경 南浦漁火 저녁 등을 밝히고 조기를 잡는 바다풍경

7경 泰國鐘聲 은은하게 울리는 태국사의 종소리

8경 芝靈暮霞 지령산에서 아련히 보이는 바다 안개

 

안흥을 대표하는 여덟 가지 경치는 일반적으로 팔경(八景)을 이야기하지만 마도기암(馬島奇巖, 마도의 기암괴석), 후봉낙조(堠峰落照, 신진도 후망봉에서 보는 노을)가 포함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안흥에는 빼어난 경치뿐만 아니라 안흥진, 태국사, 안흥정 등 역사적 유적이 많아 여기에 머무는 묵객들의 시상이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조선시대 이후 여기를 다녀간 문사들의 안흥진 문학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문학세계와 함께 역사적 사실들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먼저 이번 호에서는 조선후기 藕船 李尙迪(1804~1865)의 『안흥진에 머물며(留安興鎭)』 라는 시를 시작으로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留安興鎭

안흥진에 머물며

 

一首

滿城煙霧晝冥冥, 안개 낀 성 대낮에도 어둑어둑,

羇思渾疑殢宿酲. 나그네는 지난 밤 술에 어질어질.

官舍尋常鷗鳥下, 관아에 무심한 갈매기 날아들고,

吏民生活草蔬靑. 백성들 생활 온통 푸성귀 뿐이네.

天涯攬物花如雪, 하늘가 경물은 눈같이 흰 꽃인데,

海上論交客是星. 바닷가 이별하는 이, 별처럼 많구나.

邀人竹榻對繙經, 나그네를 대나무 의자 앞에 앉혀 두고,

最愛老僧雙眼碧. 노승은 두 눈 파랗게 독경만 하누나.

 

二首

倦吟懷古竹枝翻, 대충대충 죽지사만 읊조리려니,

百濟遺墟積水痕. 백제 옛 자취 물속에 남았구나.

一峒綠蕪深處雨, 비는 거친 골짜기 깊이 내리는데,

孤城畫角咽時昏. 고성 나팔소리 어둠 속에 우는구나.

海山文助淸雄氣, 바다와 산은 맑은 기운 돋우고,

花鳥春銷黯澹魂. 새와 꽃 저무는 봄날에 시름 깊네.

浦口月明潮未落, 달 밝은 포구 조수 가득 밀려오니,

漕船無恙泊風旛. 세운선 아무 탈 없이 들고나는구나.

李尙迪(1804∼1865), 『恩誦堂集』 詩卷二

번역 : 박영익, 진호신
 

지은이 이상적(李尙迪)은 조선 말기 역관이자 서화가로, 호는 우선(藕船)이다. 이상적의 저서 『恩誦堂集』 은 헌종이 손수 명명하였으며, 저자 생전에 중국에서도 간행되었다. 이 시는 안흥진의 경관을 잘 묘사하고 있다. 안개가 낀 안흥진성, 간밤 풍류에 취해 술잔을 기울이는 나그네, 관아에 날아드는 갈매기, 푸성귀로 버티는 고단한 백성들의 삶, 물때에 맞춰 포구를 오고 가는 사람과 조운선, 골짜기에 내리는 거친 비, 이러한 내용은 지은이가 이 일대의 풍경과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 안흥량은 날씨가 변덕스러워 비가 자주 내리고, 안개가 짙게 배이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암초가 산재한 탓에 안흥량을 지나는 배들은 물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추어 조심히 오가야 했고, 안흥에 사는 백성들은 수군역과 침몰선에 대한 쌀 부담을 짊어져야 했기에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처럼 험한 자연환경은 안흥진 백성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었지만 동시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절경이 되기도 하여 많은 문객들을 안흥에 불렀다.

죽지사(竹枝詞) : 樂府體의 한 가지로서, 남녀의 情事나 지방의 풍속 등을 읊은 것이 많다. 唐의 유우석이 낭주에 귀양 갔을 때, 新詞 9수를 지은 것이 처음이다.

 
 

진호신 shin06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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