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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가 낳은 민족시인 채광석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기사승인 2022.07.21  15: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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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추서식 및 35주기 추모제 함께 열려

   
▲ 사진 한국작가회의 김이하 시인 제공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출신으로 1980년대 민족문학운동을 선도한 고(故) 채광석 시인의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식 및 제35주기 추모제>가 지난 12일 오후 4시 광주광역시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제2묘역 채광석 묘소 앞에서 열렸다.

   
 

 
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198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한국작가회의)의 창립을 주도했고, 총무간사로 활동하면서 민주화운동을 이끈 채광석(1948.7.11∼1987.7.12) 선생은 ‘6월항쟁’ 35주년을 맞아 지난 6월 10일,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서훈 받았다.

   
 

고 채광석 시인의 이번 추모제는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윤정모), 광주전남작가회의(지회장 이지담), 35주기추모제준비위원회(위원장 윤재걸)가 공동으로 주관했고, 유족과 문학예술인들이 참석해 고인의 삶을 기렸다.

   
 

광주전남작가회의 양기창 자유실천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채광석 시인 35주기 추모제는 준비위원장 윤재걸 시인을 비롯해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역대 회장단 김준태 나종영 채희윤 김경윤 조진태 김완 시인, <한국작가회의>의 박관서 사무총장, 박몽구 이승철 김창규 류명선 권위상 김수 백수인 김해화 박석준 김옥종 백애송 서승현 김호균 유종 정종연 박노식 시인, 이명한 박호재 김남일 전용호 소설가, 윤기현 동화작가, <광주민예총>의 윤만식 박종화 전현직 회장, <나눔문화> 임소희 이사장 등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35주기 추모제는 고인에 대한 묵념, 분향,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윤재걸 준비위원장의 모시는 말씀, 채광석 시인의 약전 소개(이승철 시인), 추도의 말씀(김준태 박몽구 박관서 시인, 김남일 소설가) 채광석 시인 대표시 <어느 새의 노래> 낭송(김옥종, 백애송 시인), 채광석 추모시 <신념의 메아리> 낭송(박학봉 시인), 추모 예배(김창규 목사), 유가족 인사(강정숙, 채희석), 닫는 말씀(채희윤 소설가), 헌화 순으로 진행되었고, 뒤풀이 및 추모한마당이 광주시내 참뫼식당에서 진행되었다.

 1983년 3월과 5월, 평론과 시로 한국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채광석 선생은 5공정권의 폭압을 꿰뚫고 전방위적 활동을 개시한 문학운동가이며, ‘민족문학의 독전관’으로 평가되었다. 1983년 6월, <시와경제> 동인지에 노동자 출신의 박노해 시인을 발굴함으로써 민중문학의 서막을 열기도 했다.
 
이론과 실천으로 무장한 채광석 시인은 1975년 서울대 사대 영어과 시절 ‘김상진 열사의 추모시위’와 관련한 ‘오둘둘사건’으로 2년간 옥고를 치른 바 있고, 1980년 신군부의 5·17 쿠데타로 예비검속, 투옥되는 등 민주화운동에도 앞장섰다. 풀빛출판사 편집주간 시절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김지하 시집 『황토』,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등을 출판하기도 했다. 특히 채광석은  문학평론가로서 백낙청의 <시민적 민족문학론>을 <민중적 민족문학론>으로 그 외연과 깊이를 확장했다. 등단 이후 타계할 때까지 각종 문예지와 전국의 대학신문에 왕성한 필력을 과시했고, 자실과 민문협, 민통련의 활동을 병행했다.

채광석 시인은 ‘운동으로서의 문학’을 견인했고,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민족문학의 밤>, <민족문학교실>을 개최함은 물론 ‘운동의 조직화’를 위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기관지를 발간하여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그 결과 채광석은 민중문학 혹은 민족문학을 1980년대 문학의 주류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김명인 평론가(인하대 국문과 교수)가 말했듯이 채광석은 1980년대 초중반의 변혁적 문학운동을 가장 강력하게 추동한 중심인물이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활동이 정지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약칭 ‘자실’)의 재창립을 위해 전국의 젊은 문인들을 조직해냈고,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마침내 ‘자실’이라는 문인조직을 재건할 있었다.

민족문학을 지향한 <오월시> <시와경제> <삶의문학> <분단시대> <남민시> 동인 등을 ‘자실’이라는 단일대오로 묶어세운 채광석 시인은 ‘총무간사’라는 직책으로 ‘5공정권’에 저항하는 문예조직을 진두지휘했다. 또한 ‘민예총’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문협’의 결성과 문익환 목사가 이끌던 재야 운동체인 ‘민통련’의 문화예술분과위원장으로도 전천후적 활동을 전개했다.

채광석 시인의 주도로 ‘자실’은 부도덕한 정권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는 당대의 양심세력으로 평가받았고,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단체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김남일 소설가가 언급했듯이 채광석에게 문학은 삶이자 싸움이며, 끊임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운동이었기에 한국문단의 타성과 관념에 반기를 들고, 도전을 거듭했다. 황지우 시인이 명명했듯이 채광석은 ‘민중적 민족문학의 독전관(督戰官)’으로서 한국문학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문단의 ‘갱신’을 위해 전방위적, 전인적 삶을 온몸으로 실천한 그가 1987년 7월 12일 새벽 2시경, 서울 마포의 아현초등학교 인근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했으니, 향년 39세였다. 7월 14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에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 주관 하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주언론운동협의회, 민족미술인협의회,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 민중문화운동연합 등 민주사회단체가 망라되어 <민족시인 고 채광석 민주문화인장>이 엄수되었고, 고인의 유해는 팔당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채광석 시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민주화운동의 길을 걷던 동료 문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문단에서는 그에게 바치는 수많은 추모시가 창작되기도 했다. 1989년 7월 채광석 시인의 제2주기를 맞아 『채광석 전집』(전5권, 풀빛 간)이 완간되었고, 제13주기인 2000년 7월 12일에 안면도 ‘자연휴양림’ 안에 <채광석 시비(詩碑)>가 건립(김운성 조각, 광산 구중서 글씨) 되었다. 2004년 12월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채광석 시인을 ‘명예사무총장’으로 추대했다.
 2005년 12월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시대의 불꽃’ 시리즈 제14권으로 『채광석』(박선욱 집필)을 출간했다. 아울러 제33주기를 맞아 지난 2020년 8월 6일, 팔당공원묘지의 유해를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하는, <민족문학의 독전관ㅡ 고 채광석 시인 천장식>을 가진 바 있다.

채광석 시인이 타계한 지 어언 35년이란 세월이 지났건만 여전히 그는 문학예술인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 제35주기 추모제를 계기로 <채광석 시인 기념사업회>가 발족할 예정이다.

이승철(시인, 한국작가회의 이사) shin06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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