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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과 믿음에 대한 탐색

기사승인 2022.01.14  09: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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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낙추 두 번째 소설집 『노을에 묻다』 출간

   
 

시집『그 남자의 손』(2006)『미움의 힘』(2016)과 소설집『복자는 울지 않았다』(2014)를 출간한 바 있는 정낙추 시인이 두 번째 소설집 『노을에 묻다』를 출간했다.

이번 소설집도 탄탄한 서사구조에 풍성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노란 종이배’ ‘노을에 묻다’ ‘말코 엄마’ ‘사람의 결’ ‘유령’ ‘피어라 돈꽃’ ‘피었다 돈꽃’ 등 단편 7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의 미덕은 구어체 문장으로 소설이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또는 과거에서 미래로

연민과 믿음은 정낙추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작가는 세월호 참사가 등장하고 태극기와 촛불이 뒤섞인 광장의 가장자리 인물들을 소환하면서 따듯함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시대의 민감함을 다루면서도 사람의 결을 다독이는 정낙추는 특별한 이야기꾼이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들은 특정한 사건이나 시대적 흐름을 대변하면서도 주변부 인물을 반영한다. 그 방식은 상투적이지 않으며 주변부 인물이 중심이 되어 사회적인 의미를 반추한다. 자칫 계몽이나 교훈으로 흐르게 되는 진부함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리라. 이 소설집에는 서해안 갯바람의 짠내를 풍기기도 하고 농사꾼들의 웃음소리에 맞추어 속내를 뒤집는 놀이판이 마련된다. 독자들은 특유의 사투리 구사와 풍부한 속담에 담긴 웅숭깊은 문장에서 해학과 풍자의 진면목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노을’을 전면적으로 등장시키는 작품으로는 표제작인 「노을에 묻다」와 「노란 종이배」가 있다. 여기서 ‘노을’은 공히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시간대, 정확하게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넘어가는 카이로스(Kairos/기회)에 대한 메타포(metaphor/암시)로 읽힌다. ‘노을’을 통해 주인공들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는 뜻이 아니다.

절망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새로운 한 발’을 힘겹게 내딛는 지점의 배경을 작가는 노을로 삼은 것이다. 그 물음을 긴밀하게 탐색한 작품이「노을에 묻다」이다. 노을의 힘을 빌려 생을 정리하려 했으나 “노을이 너를 살렸다”라는 뜻밖의 환대에 주인공은 희미하게나마 생의 의지를 회복한다.
 
-덧없이 짧은 가을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하늘이 노을에 물들기 시작했다. 하루 중에 포구로 입항하는 이 순간이 제일 한가한 시간이다. 나는 커피를 들고 고물 뱃전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빠르게 달리는 배의 스크루가 하얀 거품을 토해내고 그 포말이 사라진 아득한 저쪽 수평선의 노을이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인다. 육지에서 바라보면 지금 내가 탄 배도 노을 속에 있겠지. 미금포 해변에서 바라본 그날처럼….
―「노을에 묻다」 중에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인 「노란 종이배」에서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선재’의 주변 이야기를 차츰 넓혀 가면서 선재가 노란 종이배를 바다에 띄우려는 마음의 정체를 찾아간다. 선재는 자기가 만든 노란 종이배를 타고 형이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매일 바다에 나가 종이배를 띄운다. 선재의 형 ‘명재’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11시에 침몰한 세월호에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텔레비전을 지켜보는 가운데 천천히 가라앉은 여객선엔 제주도 수학여행에 들뜬 선재의 형, 명재도 타고 있었다. 방송에선 계속 슬로모션의 한 장면처럼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급한 목소리로 속보를 알려도 선재네 가족은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 몰랐다. 할머니는 들판에서 봄나물을 뜯다가 돌아와 텔레비전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세월호 침몰 장면에 까무러친다.

 어쩌면 소설로서는 범상하기까지 한 이 장면 이후로 선재가 종이배를 접는 원인을 은연중 드러내면서 작품에 비극성을 부여한다. 그것은 형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선재의 행동을 통해서 더욱 도드라진다. 다른 한편에 있는 할머니는 바다에서 사라진 ‘큰 손자’ 명재와 선재의 기다림을 고통스럽게 바라보는 처지에 놓여 있다. 작품 말미에서 작가는 노을에 물들기 시작하는 바다에서 두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노을에 물든 바닷가에 이르자 선재가 쪼르르 달려가 종이배를 띄우기 시작했다. 잔물결이 조금 밀려왔다 조금 더 뒤로 물러난다. 물 위에 띄운 노란 종이배는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물결 따라 흔들리다가 자갈밭으로 도로 돌아온다. 선재는 밀려온 종이배를 띄우느라 정신없이 자갈밭 이쪽에서 저쪽으로 달려갔다 달려왔다 한다.

 할머니는 선재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쏟아지는 눈물을 훔쳤다. 얼마나 형이 보고 싶으면 저럴까. 선재의 간절한 기다림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흐르는 세월도 선재가 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지우지 못하리라. 선재가 띄우는 종이배는 먼바다로 나가지 못해도 마음은 물결을 타고 서해를 돌아 진도 바다에 당도할 것이다. 명재가 가라앉는 배의 선실에서 다급하게 동생에게 문자로 “선재야, 사랑한다.”라고 썼던 그 마음에 닿을 것이다.
-「노란 종이배」 중에서

 씨앗을 보살피는 민중으로서의 여성

「노란 종이배」와 「노을에 묻다」가 서정적인 작품이라면 「말코 엄마」와 「사람의 결」은 읽는 재미가 가장 탁월한 작품이다. 매력적인 인물인 「말코 엄마」의 이야기는 판소리처럼 발림과 추임새가 어우러져 문장마다 걸판지게 흐른다.

현대소설이 현실을 반영한다면서 잃어버린 캐릭터를 작가는 「말코 엄마」에서 그려내고 있다. 말코 엄마는 두 가지 사실로 대비되는 품격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나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평생 난봉으로 알뜰히 탕진한 아버지의 마지막 여자였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여태까지 아버지가 섭렵한 여자 중 가장 못생긴 여자였다는 것이다. ‘말코 엄마’는 뛰어난 음식 솜씨에 장구 장단과 판소리를 매개로 장사 수완을 발휘한다. 그리하여 말코 엄마는 인물 하나 빼고는 버릴 게 없는 여자로 소문난다. 하지만 그녀가 주인공에게 보이는 애틋한 마음을 주인공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 때문에 끝내 거부하고 만다. 그런데 어느 날, 말코 엄마가 홀연히 사라진다. 아버지는 말코가 자기 재산과 골을 다 빼먹고 도망쳤다고 찾아다니다가 폐인이 되어갔고, 집안 형편은 급격히 기운다. 하지만 나중에 반전에 해당하는 비밀이 드러난다.

- 외삼촌이 달라진 건 말코가 사라지기 즈음해서다. 평소에는 말코를 몹쓸 역병 취급했는데 슬며시 두둔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외모는 거죽에 불과한 것이고 심성이 그 사람의 본모습이라면서 말코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사람의 도리를 아는 말코야말로 아버지에게 ‘과분한 여자’라고 못 박았다. 나는 외삼촌의 그런 태도가 몹시 궁금하여 몇 번 묻다가 포기했다. 외삼촌이 대답 대신 도덕적인 장광설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궁금증은 세월이 한참 흐른 훗날에 풀렸다. 외삼촌은 내가 가정을 꾸리고 그런대로 사는 걸 보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다. “말코는 지혜로운 여자였다. 느이 애비에게서 얼마쯤 재산을 빼돌려 내게 맡겼다.”
 -「말코 엄마」 중에서

 「사람의 결」에서는 주인공 박동길을 두어 시간 동안 넋 놓고 세상 강의를 듣게 만든 교주 같았던 ‘김 선생’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가 촛불항쟁이 한창 중인 서울시청 광장에서 조우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는 ‘태극기부대’가 되어 있었다.
 
박동길은 이 곤혹스러운 만남을 통해 김 선생과의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면서 김 선생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어떤 필연을 감지해내고 비로소 김 선생의 삶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러면서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선고문 낭독이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됐다. 박동길은 특별히 놀라지 않았다. 지각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예견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다만 궁금한 건 김 선생이었다. 탄핵 심판을 앞두고 성가실 정도로 자주 걸려온 우국충정의 전화가 탄핵 선고 후 딱 끊긴 것이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우연히 만난 뒤 수십 차례 김 선생의 전화를 받았지만, 박동길은 단 한 번도 그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서 온 전화는 하나같이 대리운전업체의 번호였다.
아, 김 선생의 시간이 이렇게 고단하게 흘렀구나. 박동길은 비로소 김 선생의 삶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가슴이 저렸다. 그런 삶을 살면서도 20여 년 동안 자기 근황을 알리지 않았고 이번 만남에서도 내색하지 않았다니… 촛불집회에서 몸에 태극기를 두르고 호기를 부리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사람의 결」 중에서
 
 「유령」「피어라 돈꽃」「피었다 돈꽃」은 일종의 세태 소설인데 리얼리즘의 규율에 충실한 작품이다. 일상적인 세태를 다루면서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현실을 ‘지역적 관점’에서 고찰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급변하는 현실로 인한 우리 사회의 정신적 불구가 지역 사회의 정치 현실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유령」은 요즈음 우리 사회의 화두인 정의와 공정을 다루면서도 추리소설같이 계속 궁금증을 유발해 정낙추의 이야기를 솜씨를 드러낸 작품이다. 또한 「피어라 돈꽃」의 김봉수는 이 소설집에서 가장 생동감 있는 인물이다. 선거판에서 푼돈을 뜯어내는 그는 제목처럼 ‘총알’로 은유하는 금권선거를 해학을 통해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그리 멀지 않은 시절에 있었던, 아니 있었을 법한 이야기가 스스로 무지렁이라고 눙치는 장삼이사의 입을 통해 그들도 세상의 한 부분임을 환기하고 있다.

 작품 해설을 쓴 평론가 박명순은 청년실업의 문제, 언론의 왜곡, 선거판의 타락상 등 민감한 현안을 측면적 시각에서 다루면서도 작품 속 인물들을 미워할 수 없는 우리 시대 선량한 이웃들의 그늘진 자화상으로 살려냈다고 평했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긍정적인 측면만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에 대한 풍자와 해학의 행간에 숨겨진 넉넉한 포용, 그것이 정낙추가 바라보는 연민의 이유이며 인간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그의 인물들이 사회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끝내 존엄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 성과는 대중들에게 내세울 화려한 업적과는 거리가 멀어 가까운 이웃이 알아줄 만한 소소한 이야기지만 그 소소함의 사연이 소설의 흐름을 구성지게 하면서 개개인의 가슴에 스며드는 진정성으로 이끈다고 썼다.

내가 낳은 소설이라는 자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노산(老産)으로 겨우 세상에 나왔는데 터울마저 띄엄띄엄하다. 그 누구도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고 나도 잊을 정도로 방치했었다.
할 말도 안 할 말도 때가 있다고 소설로 불러낸 인물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오래된 시간으로 들어가서 나와 마주했던 그들에게 고단한 삶을 살았다고 인생이 하찮은 게 아니듯이 변하는 것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나 시간이 지나면 다 오래된 것이 된다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 자식들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이 드물어도 괜찮다. 나는 그들과 함께한 내게 칭찬도 연민도 하고 싶지 않다.
 -작가의 말

 정낙추가 소설 속 허구의 인물들에게 얼마나 생명력을 불어넣으려고 했는지 작가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는 정낙추는 현재 태안문화원장 직을 맡고 있다. 그는 1948 정부수립부터 1997년 외환위기까지 태안과 모항을 무대로 ‘풀의 역사’라는 대하소설을 집필 중이다. 2000년 중반부터 자료를 모으고 소설을 구상하여 현재 7년째 ‘흙빛문학’ 외 잡지에 연재 중인 이 소설은 시대를 씨줄로, 농어촌 변천사’를 날줄로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는 ‘마을 일기, 민중사’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풀의 역사’가 언제 완성할지 자신도 모른다며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정낙추의 두 번째 소설집 ‘노을에 묻다’는 인터넷으로나  태안군민들을 위해 태안 동아서점(041-672-4335)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 가덕현(태안문화공동체 ‘우리동네’ 대표)

신문웅 기자 shin0635@hanmail.net

<저작권자 © 태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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