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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碇浦樓→닻개정’ 한글학자 생가지 옆에 버젓이 한자 현판

기사승인 2021.07.23  14: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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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군 한글사랑 지원 조례’ 무색하게 한자 현판 난무… 마을정자에도 현판식 추진할 듯

수도 서울의 중심부이면서 얼굴이자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민주화의 상징공간으로 2002월드컵의 함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 서울 ‘광화문’. 조선 경복궁의 문인 광화문에 대한 한자 현판을 떼어내고 한글 현판으로 바꿔 달자는 법안까지 발의되는 등 한글 현판으로 바꾸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한글날도 다시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가운데 태안군에서는 이와 비견되는 한자 현판이 곳곳에 내걸리고 있다.

특히, 태안군에는 ‘태안군 한글사랑 지원 조례’가 제정돼 시행되고 있지만 이를 비웃듯 한자현판이 난무하고 있어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군다나 불세출의 독립운동 애국지사이면서 한글학자로 순한글신문인 <제국신문>을 창간한 우리고장 출신 옥파 이종일 선생의 생가지 옆에 조성된 정자에까지 한자현판을 내걸어 입길에 오르고 있다.

태안군과 태안군의회, 그리고 해당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7월 현재까지 한자현판이 내걸린 정자는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모두 5곳에 이른다. 태안군청 민원실 앞에 건립된 수덕정(樹德亭)을 비롯해 샘골공원 일원에 조성된 청조루(靑鳥樓), 이종일 선생 생가 인근에 조성된 정포루(碇浦樓), 고남면 장곡저수지 일원의 장곡정(長谷亭), 그리고 마을 정자에는 처음으로 이름이 붙여진 태안읍 장산2리의 ‘효의정(孝義亭)’ 등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다른 마을 정자에도 현판식을 가질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자 현판이 난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수덕정’, ‘정포루’ 등 한자현판 내걸린 정자 살펴보니

   
▲ 태안군청 민원실 앞 수덕정.

우선 태안군청 민원실 앞에 건립된 ‘수덕정’이 최근 설치된 대표적인 한자현판이다. 덕을 기르는 정자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 수덕정. 한자로는 ‘樹德亭’이라고 쓴다. 지난 5월 18일 현판식을 가졌다. 당시 군은 “군청을 방문한 민원인들이 잠시 쉬며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민원인 쉼터 ‘수덕정’은 태안군이 군청사를 개방형 공간으로 조성하며 주변 공원과 연계해 민원인들의 만남의 장소, 직원 휴게 공간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해 건축된 정자”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반군민들이 한자의 뜻풀이는커녕 읽지도 못하는 한자로 현판을 써 현판식을 가진 것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태안군청이나 민원실을 상징하는 상징성과도 연관되지 않는 생뚱맞은 뜻의 한자현판 이름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본지 취재결과 ‘수덕정’이라는 이름이 최종 지어지기 전 태안군청 본청 내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명칭을 공모한 결과 예전과 지금을 아울러 이르는 순우리말인 ‘예이제’나 ‘너나들이쉼터’를 비롯해 사락정 등 모두 39건의 명칭이 공모됐지만 결국 가세로 군수가 명명한 ‘수덕정’으로 최종 결정돼 현판에 새겨지게 된 것으로 군 관계자는 전했다.

수덕정은 본지가 입수한 ‘민원인 쉼터 현황자료’에 따르면 연면적 7.29㎡의 한옥정자로 지난해 6월 설계에 들어가 6개월여의 공사 끝에 완공됐다. 설계, 공사, 창호, 칠공사까지 모두 1억2천290여 만원이 투입됐다.

이에 대해 ‘태안군 한글사랑 지원 조례’를 대표발의해 제정한 태안군의회 전재옥 의원은 “형식적인 조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면서 “솔직히 군청 민원실 앞에 설치된 수덕정의 뜻풀이하는데도 어려움이 있는데 일반군민들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겠나. 더 이상의 한자현판은 멈추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지 인근의 정포루.

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지 인근에 조성된 ‘정포루(碇浦樓)’ 한자현판은 닻개의 지명을 따 명명한 현판으로, 그나마 한글지명을 한자로 바꿔 의미는 부여했지만 한글학자인 옥파 선생 생가지 인근에 조성된 만큼 정포루 대신 ‘닻개정’이라는 한글현판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으로 독립선언서를 직접 인쇄하고 배포한 독립투사인 옥파 이종일 선생은 1898년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 전용의 일간지인 <제국신문>을 창간해 구국운동의 선두에서 활약한 바 있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에 따라 이종일 선생 생가지 인근의 정자에는 ‘정포루’ 대신 ‘닻개정’이 어울리는 현판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원북면의 한 주민은 “차라리 순우리말인 닻개정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서상도 맞고, 닻개라는 명칭을 써 온 지역주민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특히, 정포루 인근에는 우리고장의 대표적인 애국지사인 옥파 이종일 선생의 생가지가 위치해 있고, 이종일 선생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펼친 애국지사에 앞서 순한글 신문을 만든 한글학자이기도 했던 분으로 순한글 간판으로 했어야 상징성에 있어서도 맞지 않나 본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 고남면 장곡저수지 인근의 장곡정.

이외에도 지난 15일 준공한 고남면 장곡저수지 공원화 사업 일환으로 설치된 편의시설인 정자에도 ‘장곡정(長谷亭)’을 한자화해 현판으로 내걸었다. 또한, 마을 정자에는 처음으로 태안읍 장산2리에 ‘효의정’이라고 목판에 새겨진 한자현판이 내걸렸다.

   
▲ 태안읍 장산2리 마을정자인 효의정.
   
▲ 샘골공원 일원의 청조루.

태안군은 이외에도 마을 곳곳에 설치돼 있거나 향후 설치될 예정인 정자에도 현판 명칭공모를 통해 현판식을 추진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앞으로 한자현판은 더욱 난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수덕정 한자현판과 관련한 본지의 물음에 답변 이후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마을회관 앞 정자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모해서 이름을 붙여 현판을 걸 예정”이라면서 “수덕정 이외의 현판은 각 부서별로 추진되는 사업에 따라 해당부서에서 선정해 현판을 설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정자의 현판과 관련해서는 태안읍이장단협의회 등에서 안건으로 다뤄졌던 것으로도 확인됐다.

‘태안군 한글사랑 지원 조례’ 대표발의 전재옥 의원, “한글현판 유도해야”

한편, 태안군의회 전재옥 의원이 대표 발의한 ‘태안군 한글사랑 지원 조례’는 지난 2019년 9월 열린 ‘제262회 태안군의회 임시회’에서 원안 가결돼 현재 시행 중에 있다.

해당 조례안은 국어기본법 제4조에 따라 태안군민의 한글사용을 촉진하고 한글의 보전계승과 문화민족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 조례는 특히 태안군민과 태안군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올바르게 한글을 사용하도록 각종 시책 수립, 시행과 추진 노력의 의무를 군수에게 부여하고 군민은 공무서 등이 쉬운 우리말로 표현될 수 있도록 요구할 권리를 부여했다.

특히 조례에서는 태안군이 한글사랑 촉진 및 한글의 발전·보전을 위해 ‘한글사랑 추진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 시행토록 했으며, 추진계획에는 ▲한글사랑 정책의 기본방향과 추진목표 ▲공공기관의 한글사랑 실천 방안 ▲군민의 한글 사용능력 증진과 한글사용 환경개선 방안 ▲한글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한글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일 등을 담도록 했다.

이에 더해 공공기관의 명칭, 정책명, 사업명, 구호 등을 정할 때도 어문규정을 준수하도록 했으며,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서 사용하는 행사명도 한글로 표시함을 원칙으로 했다. 또한, 태안군문화예술과장을 ‘한글책임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조례에도 불구하고 한자현판이 난무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전재옥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금처럼 한자현판에 난무하게 되면 형식적인 조례일 수밖에 없다”면서 “조례에 문화예술과장을 한글책임관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의회 회기 중 문제제기를 통해 담당과장에게 다른 부서에서도 한글을 사용하도록 권장하겠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덧붙여 “군에서 주도적으로 한글간판으로 하도록 유도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동이 기자 east334@hanmail.net

<저작권자 © 태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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