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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삼별초(三別抄)가 출수 된 마도 3호선

기사승인 2021.07.15  14: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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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유산의 보고(寶庫) 태안 앞바다 문화재 발굴의 역사<8

 침몰선 마도 3호선에서 삼별초(三別抄) 명문이 나오다
▶ 마도 3호선 죽간 ‘사심(事審) 김 영공(令公)’은 당시 무인 최고 실권자 김준(金俊)

   
▲ ‘우삼번별초’명 죽간 / ‘金 令公’명 죽간
   
▲ 마도 3호선 특산물 포장용 도기

마도 3호선은 마도1·2호선과 마찬가지로 화물표로 실린 목간 판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이 규명되었다. 출수 된 목간에 의하면 마도 3호선은 1265∼1268년 사이 침몰한 선박이다. 발송지는 전라남도 여수를 포함한 남부해안이며 최종 목적지는 당시 고려의 임시수도였던 강화도였는데 태안 마도에서 좌초된 선박이다. 화물의 수취인은 최고 권력자인 김준을 비롯해 중방, 삼별초 등 무인세력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려 있던 화물은 전복, 홍합, 등 고급 어패류와 말린 상어, 포(布), 곡물이다. 목간에 적혀있는 내용과 실제 출수유물이 일치하고 있다.

생생한 수중 출수 삼별초(三別抄) 기록

삼별초는 고려 최씨 무신정권의 사병(私兵)으로 좌별초(左別抄)·우별초(右別抄)·신의군(神義軍)을 말한다. 그것이 시대를 이어 무신정권의 경찰·전투 등 공적(公的) 임무도 수행했으므로 공적인 군대에 준하는 성격의 군대이다. 이렇게 기록으로만 전해오던 삼별초의 실체가 마도 3호선에서 출수된 죽간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죽간의 내용은 ‘右三番別抄’에 ‘마른홍합 한 섬’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강도(江都) 시기 무인 최고 집권자 김영공(金 令公)

마도 3호선에는 “사심(事審) 김 영공(令公)님 댁에 올림, 홍합 젓갈, 생강, 합쳐서 다섯 항아리”라고 적힌 죽간이 출수 되었다. 여기서 ‘영공’이라는 호칭은 제왕에게만 붙이는 극존칭으로 같은 배에서 출수된 목간 유승제(兪承制), 신윤화(辛允和)가 활동하던 1260년대 김 영공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인물은 당시 무인정권의 집권자인 김준 뿐이었다. 노비 출신의 김준은 고려 고종 45년(1258년)에 무오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인물이다. 이후 김준은 고려 원종 6년(1265년)에 시중(侍中)에 임명되었고 곧이어 ‘해양후(海陽侯)’에 봉해졌는데, 이때부터 ‘영공’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강도(江都) 지배층에 바쳐진 특산물

강도시기 집권자들에게 보내진 지방의 특산물은 다양하다. 전복(生鮑), 전복젓갈(生鮑), 물고기기름(魚油), 꿩고기(雉), 홍합, 홍합젓갈, 비단(羅), 포(布), 개고기포(狗脯), 상어(沙魚), 겉보리(皮麥), 보리(麥) 등 건어물, 젓갈류, 생선기름, 곡류, 육고기포, 직물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산품은 액체일 경우 도기호(缸), 마른 포의 경우 상자(箱子), 곡식일 경우 볏섬(石) 등에 포장하여 선적하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글/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진호신>

태안신문사 taea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태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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