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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내음으로 생기가 넘치는 대황리 해변을 가볍게 걷는다

기사승인 2021.04.01  17: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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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가 최경자의 가로림만을 걷다 58

   
 

해변 언덕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검은 비닐과 흰 비닐로 그려놓은 밭고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밭둑에는 봄을 알리는 쑥, 민들레, 소리쟁이들이 세상 밖으로 앞 다투어 나오느라 야단법석이다. '해변을 걷지 말고, 봄나물을 뜯어 쑥버무리나 할까'하는 마음이 발걸음을 잠시 붙잡는다.
해변에는 갯줄들의 붉은 새순이 뾰족뾰족하게 얼굴을 내밀고 그 사이로 빠래고둥(동 다리)들이 신나게 줄을 서서 달리기하고 있다. 겨우내 살찌운 능쟁이(칠게)의 발자국이 뻘밭 여기저기 보인다.
포근하게 부는 봄바람과 해변을 걷다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흙 밖으로 울퉁불퉁한 뿌리가 나오고, 그 뿌리의 모습이 괴상하게 생긴 쉬나무를 만났다. 오랫동안 풍화작용으로 뿌리의 표면은 매우 걸치고, 흙 속에서 죽을힘을 다해 한 줌의 흙이라도 붙잡고 살아온 모습이 안쓰럽다. 땅바닥을 기어가며 뿌리를 내렸던 힘든 삶을 한 눈으로 느낄 수 있다. 구불구불한 가지들이 바다로 넘어져 언제까지 생명을 버틸지 모를 쉬나무를 보니 황지우 시인의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시가 생각이 났다.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 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가로림만 해변을 지키느라 힘든 삶을 살아온 쉬나무. 잎이 푸르른 어느 날, 꽃이 피고 결실의 열매가 맺을 때, 그때 다시 찾아오겠다고 쉬나무와 약속을 하고 발길을 돌린다.

겨울잠에서 일어난 가지게 한 마리가 구멍 밖으로 나오려다 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빤히 쳐다본다. 향기 진한 바다 내음으로 생기가 넘치는 대황리 해변을 가볍게 걷는다.

태안신문사 taea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태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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