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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안흥진성 역사의 날개를 펴다

기사승인 2020.12.31  13: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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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됐던 ‘안흥성’이 2020년 11월 2일 국가 문화재 ‘사적 제560호’로 승격 지정됐다. 50여 년 동안 태안군에서 잘 관리하고 보존한 안흥진성(安興鎭城)을 국가(문화재청)가 함께 관리한다는 의미다. 태안군민 모두 자부심과 함께 축하할 일이다. 

 안흥진성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수군성(水軍城) 중에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고 문헌상에 많은 기록 남아있는 방어용 진성(津城)이다. 기록에 의하면 안흥진성의 축조 시기는 조선 선조 16년(1583)으로 임진왜란 때는 서해상으로 북상을 시도하는 왜군을 저지하는 요충지로, 병자호란 뒤엔 유사시를 대비한 강도(江都/강화도)의 배후 진성 역할을 했다. 효종 4년(1653)에는 새 진(新津)을 설치하면서 화정도(花亭島)가 신진도(新津島)로 이름이 바뀌는 계기가 된다. 이후 신진(新津)으로 옮긴 수군진(水軍津)은 16년 뒤 현종 10년에 구진(舊津)인 현재의 안흥진성으로 다시 옮겨 유지되다가 조선 후기 1895년 을미개혁(乙未改革) 때 폐진(閉津)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국가의 관리를 받지 못했던 안흥진성이 125년 만에 다시 국가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됐으니 실로 태안군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안흥진성 앞에는 위험한 물길이 있다. 태안사람들이 흔히 ‘관장목’이라는 부르는 뱃길이다. 이곳의 항해가 얼마나 험난했으면 이름을 난행량(難行梁)이라 부르다가 안전을 기원하는 안흥량(安興梁)이라 고쳐 불렀을까. 안흥량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곡을 운반하던 조운선(漕運船)과 무역선이 왕래하는 해로의 중간 기착지였고 국가 방어의 길목이었다. 삼남에서 고려의 개경이나 조선의 한양을 향하던 조운선이 안흥량의 사나운 물결에 빈번히 난파됐다는 기록은 문헌에 무수히 등장한다. 

 그 확실한 흔적이 2007년부터 안흥앞바다 대섬과 마도 일대에서 수중 발굴한 3만여 점의 해양 유물이다. 고려와 조선의 지배계층에게 보내는 도자기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엔 누가, 언제, 누구에게 보낸다는 내용이 적힌 귀중한 목간(木簡)과 죽간(竹簡)이 발견되어 역사학계를 놀라게 했다. 오늘날 화물의 물표와 같은 목간을 통해 험난한 항로에 난파당하여 불귀의 객이 된 뱃사람들의 이야기와 물속에서 잠겨있던 역사가 2000년대 들어서 운명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옛사람들에겐 공포의 뱃길이었던 안흥량 바다가 태안군에 역사의 날개를 펼치게 한 보물 창고가 된 셈이다.

 이처럼 중요한 위치에 축조한 안흥진성의 목적은 분명했다. 조운선의 안전 항해를 돕는 것과 국가의 해양 방어였다. 세곡을 실은 배가 난파당하면 조정은 재정에 치명적인 어려움이 생긴다. 그렇다고 그 당시엔 거리가 멀고 대량운반이 불가능한 육로를 택할 수 없는 노릇이었을 게다. 안흥진성의 수군들은 세곡을 싣고 오는 조운선을 안전하게 안흥량(관장목)을 통과시키기 위해 물때를 계산하고 풍랑을 대비하여 험난한 뱃길을 호송하였을 것이다. 안흥량의 뱃길이 얼마나 사나웠으면 고려와 조선 시대 조정은 이 위험한 뱃길을 통과하지 않고 개경이나 한양을 가기 위해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관통하는 굴포운하 개설을 시도했을까. 이는 조정에서 안흥량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인식했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증명한다.

   
 

  안흥량은 개방국가였던 고려 시대에 국제 해양 무역의 중요한 중간 기착지였다. 해상교역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안흥량의 거센 물결을 무사히 통과하는 위험한 뱃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897년 전에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高麗)의 서울 개경을 다녀가서 쓴 ‘고려도경’에는 안흥량의 물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있다. 

 서긍은 1123년 5월 16일 정사와 부사가 동승한 관선(官船)인 신주(神舟) 2척과 민간 선박(客舟) 6척에 인원 800명을 대동하고 송나라 강남의 명주항을 출발하여 1123년 6월 8일 태안 마도 안흥정을 경유, 6월 12일 황해도 예성강 벽란도를 거쳐 개경에 도착했다. 귀국길에 오른 서긍은 42일 만인 8월 27일에 중국 정해현(定海縣)에 도착하여 이듬해 송나라 왕 휘종에게 고려의 뱃길과 풍속을 소개하는 고려도경(高麗圖經) 40권을 바쳤다. 그 책의 마도와 안흥 바다에 관한 서술은 다음과 같다. 

‘물은 달고 초목은 무성하여 고려 관마(官馬)를 평상시 이곳에서 방목하므로 마도(馬島)라는 이름을 얻었다. 섬의 주봉(主峯)은 온화하고 두터운데 왼팔로 둥그렇게 감싸 안은 형국이다. 앞으로는 새 부리 모양의 돌 하나가 바다에 잠겨있어, 격렬한 물결은 굽이치는 파도를 일으키고 들이치는 여울이 솟구쳐 오르는 매우 기괴한 모습을 뭐라고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아래를 지나가는 배들은 감히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암초에 부딪힐까 염려하는 것이다. 그곳에 객관이 있는데 안흥정(安興亭)이다.’ 

 이렇듯 안흥앞바다(안흥량)와 신진도, 마도의 중요성은 여송시대(麗宋時代)와 조선 시대 많은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근래 엄청난 수중 문화제가 발굴되어 태안은 우리나라 해양 역사문화에 가장 주목받는 지역이 됐다. 그에 발맞춰 안흥진성이 국가 문화재 560호로 지정됐으니 늦었지만 시기적으로 매우 적절하다 하겠다.

 때마침 2020년 4월 22일에 조선 시대 신진도 수군의 주둔지였던 폐가(1843년 건축)에서 19세기 초인 1815~1820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 수군의 명단이 적힌 군적부(軍籍簿)가 발견됐다. 현재 국립해양유물전시관(관장 이은석)에서 전시하고 있는 공문서(公文書) 군적부는 60여 명의 군역 의무자 이름, 주소, 나이, 신장, 부친의 성명과 함께 군포(軍布)와 곡식을 받아 수군을 관리한 내용이 적혀있는 희귀한 사료(史料)다.

 안흥진성과 안흥량의 험한 바다, 신진도, 마도는 21세기 우리나라는 물론 동북아 해양 문화역사의 한복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문헌의 기록이 그걸 말해주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 소장하고 전시하는 유물들이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 

   
 

  올해 태안문화원에서 열린 ‘충남 향토사대회’와 해양포럼(태안해양유물전시관) 학술대회에서 진호신 연구관(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은 ‘태안 앞바다 유적의 현대적 활용’이라는 주목할 만한 주제발표를 했다. 그는 태안 앞바다가 풍부한 해저 문화재를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해상교통이 발달한 고대로부터 근대까지 지형적 요인과 자연현상이 어우러진 결과로 서울로 가는 모든 물자는 험난한 태안 앞바다(관장목)를 통과해야 했고 안흥량의 자연조건으로 생긴 해상사고는 역설적으로 태안군민들에게 풍부한 문화재를 접하게 했다. 

 활용방안으로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해양 문화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마도의 잔도길, 마도 안흥정의 복원과 사신길, 신진도 옛 수군 길과 상인(객주)의 길, 해양유물전시관, 나래교, 안흥진성, 굴포운하’를 제시했다. 태안의 해양 역사문화를 관광에 접목하는데 마땅한 제안이다. 

 거기에 조금 덧붙인다면 나래교를 건너서 안흥진성의 남문을 통과하여 성안 마을을 둘러보고 태안읍의 백화산과 마애삼존불, 동학기념관과 굴포운하를 묶는다면 최고의 해양 역사 관광벨트가 될 것이다. 마침 우리나라 최서단에 위치한 격렬비열도가 ‘국가관리 연안항’으로 지정됐으니 옹도, 가의도를 잇는 섬 여행과 고대의 역사를 만나는 신진도 유물 전시관과 안흥진성의 관광코스는 우리나라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다고 본다. 더구나 코스의 중간중간마다 만리포와 연포, 천리포 수목원 등, 뛰어난 자연경관과 안흥항구의 싱싱한 수산물에 자랑할만한 태안의 먹을거리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관광은 없을 것이다.

 또한, 진호신 연구관은 마도 안흥정(安興停)의 발굴조사와 실체가 밝혀진다면 다양한 재현사업과 이벤트가 가능할 것으로 봤다. 2023년 송나라 사신 ‘서긍’ 방문 900주년을 기념하여 흑산도(黑山停) 군산(群山停) 안흥(安興停) 영종도(慶源停)를 경유하는 행사와 국제적인 학술대회를 개최하면 태안의 역사적 이미지 제고에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태안 안흥진성과 마도의 안흥정은 국내뿐 아니라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꿈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바다는 충남의 새로운 블루오션이다. 역사학계도 안흥앞바다의 수중 유물 발굴로 인하여 태안을 주목하고 있다. 태안 안흥진성과 안흥량은 천년의 잠을 깨고 날개를 활짝 펴는 중이다.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안흥진성과 안흥량의 험한 물살이 간직했던 소중한 문화유산을 잘 활용하는 건 현대를 살아가는 태안군민의 몫이다. 소중한 그 문화재에는 아무도 모르는 그때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가 있다. 한마음 한뜻으로 상상의 날개에 힘을 보탤 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고대 뱃길의 중심지 태안 앞바다를 근거지로 살아온 태안군민은 소중한 문화재를 갖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의 역사를 알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인구가 국력인 시대다. 지방정부 태안도 마찬가지다. 인구를 인위적으로 늘릴 수 없다면 잠깐 다녀가는 관광인구라도 늘리는 수밖에 없다. 먹고 보는 관광은 한계가 있다. 이제 역사와 문화가 곁들인 관광에 눈을 돌려야 한다. 안흥진성이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기초는 세워졌다.

 영토를 넓히는 일은 다른 지역과의 왕래하는 시간을 좁히는 것이다. 지금 태안에서는 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안면, 원산대교 개통과 대산, 만대의 연륙교 계획이 물리적 거리를 가까이하는 일이라고 본다. 이렇게 넓어진 영토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보고, 배우고, 묵어가도록 준비하는 것에 태안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을 앞당기려면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해양 역사문화를 간직한 땅에서 산다는 자부심과 함께 당당하고 품위 있는 정서를 간직한 태안군민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글 : 정낙추(태안문화원장. 시인)

태안신문사 taea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태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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