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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병고는 과연 끝을 볼 수 있고, 또 그때는 언제일까?

기사승인 2020.10.22  15: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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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은 투병기 ⑫

   
▲ 소설가,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공동대표 지요하

 나는 지난 4월부터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서울 서초동의 모 한의원을 다니며 처음 접해본 특이한 방법으로 진료를 받았으나, 9월이 다 가도록 전혀 변화가 없고 돈만 엄청 들어 그 한의원 치료를 포기했다. 한방치료비가 비싸다는 것은 일찍이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서초동 그 한의원의 치료비는 유난히 비쌌다. 치료 예정 기간 2년 동안 지출해야 할 돈이 무려 2,000만 원이 넘었다. 공무원인 딸이 운전을 맡아 한 달에 한 번 꼴로 토요일에 서울 서초동을 다니는 것도 힘들고 희망도 생기지 않고 해서 그 한의원을 가지 않기로 했다.

 그 한의원 진료를 접기로 하고, 그럼 인제 어떻게 할 것인가 막연해 하고 있을 때, 지난 9월 어느 날 천주교 신자인 한의사 친구가 부인과 함께 우리 집을 찾았다. 태안에서 한의원을 하며 태안 성당에서 우리 부부와 함께 레지오 활동을 하다가 이태 전 서울로 자리를 옮긴 친구였다. 그는 현재 서울 영등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는데, 내가 ‘동의’를 부탁하며 보내준 청와대 청원문을 읽고 전화를 해주더니 부부가 함께 직접 우리 집을 찾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적접 만든 것이라며, 인체의 면역력을 증강시켜 준다는 액체로 된 약을 몇 병 가져왔다. 또 천연 재료로 만든 것이라며 코에 뿌리는 약물도 몇 병 내놓았다. 그는 자신이 보기에는 내 코 질환이 면역력 문제 같다는 말을 했다.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약물을 일정 기간 밤 10시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변화가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나는 확신에 찬 그의 말에 희망이 생기는 것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간 그는 일주일 간격으로 그 약을 3번 가량 택배로 보내주었다. 한꺼번에 많이 받아서 일주일 이상 보관하며 복용하면 약물이 변질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여러 과정을 거치며 배양된 그 약을 계속 공짜로  받는 게 미안하여 하루는 통화 중에 ‘비용’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명쾌한 어조로 말했다.

 “우선 병부터 고치고 봅시다. 그리고 비용 문제는 하늘나라에 가서 따집시다.”

 그런데 9월이 다 지나고 10월 상순이 뉘엿뉘엿해지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다. 나는 곧 그 친구와 통화를 했다. 배양 시설이 온전치 않아 기온이 내려가는 때는 배양이 안 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비를 온전히 갖추려면 돈이 꽤 드는데, ‘투자 개념’으로 300만 원 정도 부담해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나는 곧 난감해졌다. 아내의 퇴직연금과 내 보훈연금으로 생활하는 처지였다.

더욱이 서울 서초동의 라 모 한의원에서 400만원이나 써버려서 현재 우리 부부의 카드 사용이 모두 막혀 있는 실정이었다. 또 인천으로 자리를 옮겨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덜컥 집을 샀는데, 다달이 이자와 원금 일부를 갚아나가는 일이 버거워 보여서 내가 매월 일정 금액을 도와주고 있는 처지였다. 그래서도 300만원을 한꺼번에 빼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한의사 친구의 면역력 증강 처방에, 내시경 장비를 갖춘 서울 ‘코비한의원’의 “코의 원래 구조에 변형에 생겨서…”라는 진단 내용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에 의문이 생겼다. 또 서울 삼성병원 이비인후과 김효열 교수의 진단서에 기록된 ‘상세불명의 비염’이라는 진단도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었다.

 다시 양방치료로 전환하다

 이래저래 나는 300만원 투자 문제를, 그 한의사 친구의 전화를 받은 날로부터 보름가량이 지나도록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이 실린 <태안신문>이 간행되면 곧바로 신문 칼럼으로 답변을 대신할 생각이다.

 지난 5년 동안의 온갖 노력과 비용 감당에도 아무 보람도 없이 내 코 질환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다. 콧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코 가래는 더욱 짙어졌고 비린내도 심하고, 한쪽 코를 막으려는 듯이 응고되기도 해서 불편이 심하다. 수시로 물을 마시면서 수없이 코 가래를 뱉어내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지금은 다시 서산의료원 이비인후과를 다니며 양방치료를 하고 있는데, 여전히 온전한 치료는 아닐 것 같아 생각할수록 암울하고 비통하다. 내가 지난봄부터 걷지 못하게 된 것도, ‘척추협착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실은 코의 불편으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한 탓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아무 희망도 없고 어디에 등 부빌 언덕도 없고, 연옥 같은 삶이 지속된다. 과연 나는 이승에서 코 질환 병고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무시로 2017년 6월 4일이 떠오르곤 하는데, 생각할수록 후회스럽고 한탄스러워 오금이 저리곤 한다, 그날 나는 왜 서산의료원엘 갔던가. 왜 아내와 상의도 하지 않고 하필 아내가  출타한 날 주변의 의견도 들어보지 않고 혼자 서산의료원에 가서 아스피린도 까맣게 잊은 채 비염수술을 했던가. 왜? 왜?

 이미 쏟아버린 물이고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지만, 오늘의 내 생고생은 바로 그 날의 비염수술로부터 비롯된다. 그 날의 그 불운으로 내 인생은 오지게 철저히 망가졌다.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는 폐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지요하 jiyoha@naver.com

<저작권자 © 태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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