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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대섬 앞바다, 문화재 발굴의 여명을 밝히다

기사승인 2020.07.15  17: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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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유산의 보고 태안 앞바다 문화재 발굴의 역사<1>

주꾸미 어로작업을 하던 어부의 신고로 침몰선 정체 드러나
12세기 개경으로 가던 선박에서 2만여점의 도자기와 화물표 쏟아져
바닷속 경주 태안 마도 앞바다 수중발굴로 이어지는 계기 마련

   
▲ 2만여점의 도자기가 쏟아진 태안 대섬 수중발굴

  신안선 이후 대표적인 수중발굴은 주꾸미가 건져 올린 고려청자라고 알려진 태안 대섬 앞바다 수중발굴이다. 2007년 5월 충남 태안 대섬 앞바다에서 주꾸미를 잡아 올리던 어부 김용철씨는 주꾸미가 청자를 붙들고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선명한 비색을 띠는 청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값나가는 유물이었고 이에 김용철씨는 태안군청에 이 사실을 신고하였다. 봄철 산란한 주꾸미는 외부로부터 알을 보호하고자 주변의 조개껍질 등을 빨판으로 흡착해서 은폐하는 습성이 있는데 조개 대신 바다에 흩어져 있던 청자를 사용했던 것이다.

  주꾸미의 고려청자 발견 소식을 접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는 바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수중 긴급탐사를 실시하였다. 탐사결과 수심 12m 내외에서 청자 9점을 수습하였고 주변에 다량의 청자가 흩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탐사지역이 이미 언론에 알려져 있어 도굴의 위험성이 있었고, 어로 행위에 따른 유적의 훼손을 방지하는 조치가 필요했다. 이에 문화재청에 현장보존을 위해 발견해역을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설정하여 어로작업 등의 수중잠수 행위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긴급탐사 결과를 통해 더 많은 유물이 매장되어 있을 것을 예측하였고 2007년 7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연차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은 바다 속 갯벌 층에 드러나 있는 유물을 수습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는데 유물이 조류에 의해서 재차 매장되거나 떠밀려 가는 위험이 있어서 현장에서 바로 수습하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2007년 조사 3일째, 조사를 담당하던 잠수사가 가슴에 커다란 항아리를 안고 올라왔다. 선상으로 올라온 잠수사는 청자 운반선이 매장되어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로써 태안 앞바다에서도 완도선과 십이동파도선에 이어 우리나라 세 번째로 청자운반선이 발견되는 쾌거를 이룩하는 순간이었다.

  발굴 유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12세기 고려시대 청자였다. 청자는 다양한 종류로 무늬나 색깔 등에서 약간씩의 차이가 있으나 전반적으로 12세기 중반으로 추정되었다. 제작지는 고려청자의 대표적 산지인 강진지역으로 파악되었으며 유약 상태가 매우 양호한 상품으로 왕실이나 귀족층이 사용했을 것으로 보았다. 대접이나 접시와 같은 그릇 뿐만 아니라 참외모양주전자(瓜形注子), 두꺼비모양벼루(靑磁蟾形硯), 사자모양향로(獅子形香爐)와 같은 특이한 형태도 있다. 승려들의 식사용구인 바리때(鉢盂)는 서너개가 한 묶음인 형태로 많은 수량이 발굴되었다. 이는 고려시대 승려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발굴 중에는 얇게 다듬은 나무에 먹으로 글자를 기록해 놓은 화물표인 목간(木簡)이 발견되었다.

이들 목간은 청자를 포장하는데 사용한 지지대 사이에 있었는데 수중에서 고려시대 목간이 발견된 것은 최초였다. 목간에 쓰인 글자를 판독한 결과 청자의 발송자는 탐진(耽津, 지금의 강진)의 향리였고, 수취자는 개경(開京, 고려의 수도)에 있는 최대경(崔大卿) 등 관료층으로 나타났다. 또한 도자기를 몇 꾸러미 보낸다는 내용과 함께 운송 책임자의 서명에 해당하는 수결(手決)도 적혀 있었다. 발송자와 수취자, 운송물량, 운송책임자 등이 기록된 우리나라 수중발굴 역사상 최초의 화물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안선 이후 최대의 유물이 쏟아진 태안 대섬 앞바다 수중 발굴은 그야말로 보물선 신드롬이라는 신선한 충격을 전 국민에게 안겨주었다. 특히 태안 대섬 발굴을 하는 동안 태안 마도 해역의 역사적 중요성이 파악되어 마도 앞바다가 동북아시아 최대의 해상 기착지라는 것이 판명되었던 것이다. 태안 마도에 사는 주민 심선택씨의 신고도 한몫하면서 마도 앞바다 탐사를 진행한 결과 2008년 7월에는 청자 515점이 묶음 단위로 출수 되었고, 연이어 각종 청자, 백자, 국내외 닻돌, 중국 도자기, 마도 1호선이 발견되는 쾌거를 이루며 마도 해역은 새로운 수중발굴의 메카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지형적으로 이 지역은 서해로 돌출되어 파도가 거세고 안개가 심하며 해저에는 암초가 많고 네 방향에서 중류(衆流)가 흘러 물길이 해저면을 향하여 꺾여 흐른다는 사실도 파악하였다. 그래서 예로부터 마도 앞바다 일대의 안흥량(安興梁) 해역을 난행량(難行梁, 물살이 급하고 통행하기 어려운 바닷길) 이라고 불렀다. 역사적으로 보면 충청 이남 지역에서 거둔 세곡을 왕도로 운송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태안 마도 앞바다 안흥량(安興梁)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도 밝혀져 이곳 태안 앞바다가 전략적 수중발굴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 신진도 허허벌판에 국립전시관의 여명을 밝히다

  주꾸미 태안선이 발견된 2007년 12월 당시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수중발굴과장이었던 문환석씨가 이곳 신진도에 고선박 보존처리 시설인 탈염장(고선박의 소금기를 없애는 수조시설)을 건축하기 위하여 허허벌판에 첫 공사를 추진하였으며, 태안군에서는 물심양면으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신진도에 새터를 마련하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이 탈염장이 2011년 태안보존센터로 결실을 맺었고, 태안보존센터는 2018년에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 탄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전시관의 탄생은 신진도와 같은 도서벽지에서도 국립박물관이 탄생할 수 있다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바야흐로 주꾸미가 물고 온 태안 대섬 발굴은 태안 마도 앞바다 일대에 문화재 발굴의 여명을 밝혀준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 진호신>

태안신문사 taea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태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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