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점점 깊어지는 불운과 고통의 심연

기사승인 2020.02.21  10:01:58

공유
default_news_ad1

- 끝나지 않은 투병기

   
 

다음날 오후 퇴원을 한 다음 동생이 차 운전을 하여 아내와 함께 필동에 있는 혜은당‘이라는 한의원을 찾아갔다. 태안에서 사진관과 체육관을 운영하는 한 후배에게서 소개받은 후비루 치료 전문 한의원이었다. 그 후배는 세 번이나 코 질환 수술을 받은 후에 혜은당한의원을 알게 되어 약을 보름치씩 세 번 지어먹고 후비루를 고쳤다고 했다. 나는 그 한의원의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 있는 ’후비루 치료의 명가‘라는 글을 자세히 읽고 그 한의원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됐다.


 그 한의원에 처음 간 날 나는 원장에게 내 후비류의 원인과 내용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또 몸 여러 곳에 침을 맞기도 했다.  그리고 약을 보름치씩 세 번 지어먹었다, 약값은 보름치 한 재에 25만원이었다.


 혜은당‘ 한의원은 코비한의원과 달리 내시경 장비 같은 것도 없었다. 환자의 구술만으로 진단이 가능하거나 정확할지 의문이었다.    


 나는 한약이 신장에 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서울 보훈병원에서 여러 번 주의도 들었다. 그런 만큼 신장 걱정이 없지 않았으나, 우선 후비루부터 고치고 보자는 생각으로 한방치료도 병행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서울 ‘코비한의원’과 태안 ‘명성한의원’의 치료 경험도 있고, 역시 한방치료로는 후비루를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괜히 비싼 한약 값으로 비용 지출만 컸고, 시간 낭비에다 쓰디쓴 약을 먹느라 헛수고만 한 셈이었다. 또 신장 부담만 키운 꼴이었다. 무엇보다도 신장이 걱정이었다.

 

 한 순간의 불운, 형벌 같은 병고로 이어지다
 
 삼성병원 이비인후과 축농증 수술 이후 나는 매일 긴장과 불안 속에서 살았다.. 축농증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축농증 진단과 수술이 정확한 것이었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이었다.


 서울 ‘코비한의원’의 젊은 여성원장한테서 들었던 말이 노상 내 귓가에서 맴돌았다. 2차에 걸친 비염수술로 코 내부의 원래 구조에 변형이 생겨서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치료를 해도 물리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러므로 치료 효과는 50% 정도일 거라고 한 말이었다.


 나는 그 50%가 어떤 것인지 모호해지면서 한편으로는 그 50%만이라도 명확한 것이기를 간절히 빌며 과도한 비용 지출을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서울 보훈병원과 가톨릭대, 성모병원, 또 ‘삼성드림’이라는 전문병원과 삼성병원의 이비인후과 의사들을 처음 접했던 날 맨 먼저 들었던 말이 왕왕 떠올라 불안과 공포감에 시달려야 했다. 코의 점막 공간이 비정상적으로 넓다고 한 말이었다.


 축농증 수술 효과는 한 달 정도 유지됐다. 그때는 가족과 함께 토요일 저녁의 주일 특전미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례하며, 이런저런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3월 한 달 동안 서울 보훈병원에 입원하여 복막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입원 중 한번은 저녁에 휴게실에 앉아 있던 중 다시 후비루 증세가 발생되어 휴지에다 코 가래를 몇 번 뱉았다. 그러자 여러 입원 환지들이 내게 핀잔을 했다. 병실로 들어가라느니, 방에서 나오지 말라느니 말들이 많았다. 나는 먼저 화장실로 가면서 큰 당혹감과 슬픔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 효과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그 후 나는 후비루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를 무겁게 살았다. 서너 달 가량 계속 한 달에 한 번 꼴로 서울 삼성병원엘 다니다가  5월쯤에는 이비인후과 김효열 교수에게 축농증 수술을 다시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김 교수는 수술을 다시 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심리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며 정신신경의학과에서 심리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나는 후비루 증세가 너무도 분명하여 심리 치료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김효열 교수는 병원에는 이제 그만 오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희망의 끈마저 완전히 놓쳐버린 듯 막막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로써 내 삼성병원 치료도 허무하게 끝났다.

 

 삼성병원 치료도 무위로 돌아가다

 

 처음 삼성병원에 다닐 때는, 또 한동안은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했다. 어지간히 걸을 수 있는 덕이었다, 그러다가 2019년부터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예전의 내 다리가 아니었다. 수면제 탓이었다. 2017년 6월 5일 서산의료원에서 비염수술을 받은 이후 코가 불편해지면서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수면제를 먹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태안보건의료원과 서산의료원, 또 서울 보훈병원 등에서 수면제를 처방 받았는데, 지난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하다 보니 이제는 전체적으로 예전의 몸 상태가 아니게 되고 말았다, 전에는 거의 지속적인 후비루 발작 때문에 버스나 지하철을 탈 수 없었는데. 이제는 걸음을 걷지 못해  도저히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한다. 생각할수록 비참해지는 심정이다.


 축농증 수술을 받기 전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내가 자주 코 가래를 뱉어대니까 한 중년 여인이 곱지 않은 소리로 핀잔을 했다. 아내가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지 아나.” 라고 속상한 말을 했고, 나는 “나잇살이나 자신 분이 되게 인정머리 없네.” 라는 말을 내뱉으며 자리를 옮겨 버렸다.
 

 내게 동정을 베푸는 중년 여성도 있었다. 서울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태안에 내려온 여성인데, “아저씨, 고생이 너무 크시네요.” 라며 진심으로 안쓰러워하는 표정을 보였다.


 “이 병으로 또 한 번 서울 삼성병원엘 갔다 오는데, 곧 수술은 받게 될 것 같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 어린 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서산엘 가는데, 중간 좌석에서 여러 번 코 가래를 뱉자 어송검문소에서 잠시 버스를 세웠을 때 운전기사가 멀미 탓으로 알았는지 내게 비닐봉지를 갖다 주기도 했다.

지요하 jiyoha@naver.com

<저작권자 © 태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3
default_setImage2

최신기사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