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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농증 수술. 일찍이 한번 상상해보지도 않았던 일

기사승인 2020.01.17  11: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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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은 투병기 (4)

   
 

나는 서울 삼성병원에 전화를 걸어 여성 안내 직원의 녹음된 말에 따라 이비인후과 진료를 예약했다. 내가 처음 서울 삼성병원에 간 때는 그늘을 찾는 한여름이었고, 처음에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을 이용했고, 일원역에서 8분 간격의 셔틀 버스를 탔다.


 서울 삼성병원 이인후과 코 질환 전문 김효열 교수의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먼저 다른 방으로 가서 뭔지 모를 두어 가지 검사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김효열 교수를 대면했는데, 김 교수는 내시경 관찰을 해보더니 내 코의 점막 공간이 너무 넓다는 말을 했다. 나는 2년 전 서산의료원에서 비염수술을 받은 일, 아스피린 복용으로 말미암아 지혈이 되지 않아 재수술을 한 일과 지속적인 한쪽 코 막힘 현상, 간헐적인 후비루 현상 때문에 여러 개 병원과 한의원들을 전전한 사실을 실토했다.


 김 교수는 왠지 다소 난처한 기색이기도 했다. 먼저 CT촬영을 해보자고 했다. CT 촬영 후 다시 김 교수를 보았는데, 사진에 관한 자세한 말을 하지 않고 생리식염수로 코를 세척하는 방법을 새롭개 알려주었다. 몸을 구부려 코가 최대한 밑으로 향하게 한 다음 주사 용기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그동안 생리식염수로 코 세척을 할 때 그냥 선 채로 주사 용기에 담긴 식염수를 콧구멍 밑에서 위로 세게 주입하는 식으로 하곤 했었다. 김 교수는 생리식염수가 부비동 깊숙이 침투해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김 교수는 코에 뿌리는 약 한 가지를 처방해 주고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했다. 


 나는 다른 방으로 가서 간호사로부터 다음 진료 일을 제시받은 후 원무과애서 처방전을 받았다.
 병원 밖 약국에서 약을 산 다음 지하철을 타면서 왠지 다소 실망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와서 비닐봉지 안의 약을 꺼내보면서 다시 한 번 실망했다. 삼성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내가 이미 여러차례 서산의료원 이비인후과에서 처방받아 사용했던 ‘나조넥스’라는 약이었다.


 효과 없는 그 약이나마 별 희망 없이 사용하면서 한 달 가량을 견뎠다 그리고 다시 삼성병원애 갔을 때 나는 김희열 교수에게 ‘나조넥스’가 이미 여러 번 서산의료원에서 처방받았던 약임을 실토했다.
 김 교수는 내가 입으로 연신 뱉어내는 코 가래를 본 다음 이번에는 ‘리노밴트’리는 약을 처방해주었다.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약이었다. 그 약을 처방해주면서 김 교수는 자신 있게 한마디 했다.

 “이 약을 사용하면 후비루가 멎을 겁니다.”


 다시 병원 밖 약국에서 코에 뿌리는 ‘리노벤트’ 한 병을 산 다음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집에 내려온 즉시 ‘리노벤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이틀쯤 지났을 때 나는 후비루가 멎는 것을 느꼈다. 나는 후비루로부터 해방된 기분이었다. ‘리노벤트’효과가 분명한 것 같았다.


 그 후 한 달 가량 나는 자유롭게 생활했다. 확실히 큰 병원 의사는 다르다는 색각을 했고, 김효열 교수에게 감사하곤 했다.    
 그런데 후비루가 멎은 콧속에서 가끔 이상한 통증이 느껴지곤 했다. 비강  쪽 그 통증의 정체가 뭘까 궁금했고 불안했다.
 그래도 후비루 멎은 상태가 계속되기를 바랐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날 우체국에 가서 일을 보던 중 느닷없이 후비루 사태가 발생헤서 황급히 밖으로 나외 화단에 여러 차례 코가래를 뱉어내었다. 실망과 두려움이 힌 가슴 무거웠다.
 또다시 삼성병원에 갔을 때 나는 김효열 교수에게 호소했다.
 “아무래도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축농증 수술, 2017년의 비염 수술을 원망하다


 수술 요구를 나는 전에도 둬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김 교수는 명확한 어조로 “수술은 안됩니다,”히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또다시 수술 요구를 했다.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니, 수술 외로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김 교수가 선뜻 동의를 해주었다.
 “그럼 한번 해봅시다.”

 나는 곧 다른 방으로 가서 담당간호사로부터 수술 날짜를 제시 받았다. 수술 날짜는 두어 달도 더 남은 내년(2019년) 3월이었다.


 집으로 내려온 후 나는 더욱 극심해진 후비루 때문에 하루하루가 몹시  힘들었다. 도저히 3월까지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2018년 말 나는 서울 삼성병원에 전화를 걸어 이비인후과 수술 관련 사항을 담당하는 간호사와 통화를 했다.
 “도저히 내년 3월까지 못 견딜 것 같습니다.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 안에 죽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수술을 좀 앞당길 수 없을까요>”
 고맙게도 담당 간호사는 내년 1월 7일로 수술 날짜를 대폭 조정해 주었다.


 무시로 쏟아지는 후비루 때문에 하루하루가 형벌 같은 가운데 어느덧 해가 바뀌고 드디어 수술 날이 됐다. 수술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차 운전을 또 딸이 맡았다. 딸은 차를 지하주차장에 넣은 다음 혼자 먼저 병원을 나갔다. 봉천동 이모 집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오기로 했다. 병상은 아내가 지키기로 했다.


 나는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불운의 그날(2017년 6월 5일)을 다시 떠올렸다. 그날 비염수술을 하러 서산의료원에 갔던 일이 다시금 한없이 후회스러웠다. 왜 갔던가 왜 갔던가 소리가 절로 입 안에서 맴돌았다.


 왜 비염수술을 받으러 가면서 아스피린 복용 사실을 까맣게 잊었는지, 왜 의사도 간호사도 아스피린 복용 여부를 묻지 않았는지, 그 모든 일들이 원망스럽기 한량없었다.


 드디어 축농증 수술이 시작됐다. 내가 일찍이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평생 동안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줄로만 알았던 희한한 병고였다.


 나는 수면마취가 아닌 부분마취를 선택했다. 수술을 진행하면서 김효열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염증이 있네요. 수술하길 잘했네요.” 그리고 잠시 후에는 또,
 “숨어 있는 고름도 있네요.”
 

 나는 의아했다. 수술 전 내시경 관찰로는 염증이나 고름이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그건 예외적인 일이 아닐까?


 어떻거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살았구나 싶기도 했다.

지요하 jiyoha@naver.com

<저작권자 © 태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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