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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잠든 인평리 선영에서 영원한 안식 들어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기사승인 2019.12.19  15: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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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평리에 선영 정한 사연부터 서산AB지구를 막은 현대 정주영 전 회장의 일화까지 ‘흥미진진’

   
▲ 사진은 지난 12일 선영으로 운구되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수우망월(水牛望月)’

풍수지리에서는 수우망월은 명당터로 꼽힌다. 수우망월 터가 바로 태안에 있다. 태안읍 인평리 야산이 그곳. 수우망월로 통하는 인평리의 명당자리에얼마전대한민국정계의 거목 한 사람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그는 바로 자본금 500만원으로‘대우신화’를 이룬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31살에 직원 5명과 함께 대우실업을 창업한 뒤 45세에 대우그룹 회장에 오르면서 재개 2위까지 끌어올린 김 전 회장은 지난 9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그가 지난 12일 그의 모친이 잠들어 있는 태안읍 인평리 선영(산 64-2번지)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인평리 주민들과 대우의 인연, 그리고 인촌 김성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선영은 태안읍 인평리의 야산이다. 이 선영은 1981년 김 전 회장의 모친이 이곳에 잠들면서 인평리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이곳 인평리를 선영으로 잡으면서 대우그룹은 승승장구했고, 당시 재계 순위를 다투던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서산 AB지구로 바다를 막은 사연과도 연결되며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그 에피소드를 이 마을에 살고 있는 홍재표 도의원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김 전 회장과 모친이 잠든 인평리 선영은‘수우망월’명당터로 김 전 회장의 모친이 잠들기 전인 1981년 이 땅을 선택한 이가 동아일보의 창업주인 인촌 김성수였다.

당시 풍수지리에도 능했다고 전해지는 인촌은 김우중 회장과도 인연이 깊어 선산을 직접 보러 전국을 다녔고, 그의 눈에 띤 곳이 바로 태안읍 인평리, 지금의 선영 자리다.

인촌은 인평리에 수일을 머물면서 터를 연구했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TV가 흔치 않아 라디오를 많이 들었는데, 인촌 또한 마을에 머물면서 밤새 라디오를 들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북한에서 삐라를 뿌려대고, 간첩도 많았던 시기로 마을주민들은 낯선 이를 간첩으로 오인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오해 속에서 결국 선영으로 낙점 받은 인평리 야산. 당시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따르면 인촌이 대구 출신의 김우중 당시 대우실업 사장에게 인평리를 찍어“좋은 자리가 있는데 정치를 할 것이냐, 기업가로 크고 싶으냐”고 물었고, 김 사장이“최고의 기업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현재의 선영 자리를 택하게 됐다는 설이다.

현재 김 전 회장이 묻힌 선영자리 좌우에는 봉우리가 있는데 그 중에 제왕의 자리가 있었지만 제왕이 자리가 아닌 세 개의 봉우리 중 중간에 묘 자리를 썼고 이후 대우실업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당시 재계를 호령하던 정주영 현대회장이 대우의 급성장을 견제한 듯 보이자 주변의 풍수학자가“바다를 막으면(대우의 성장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해 선영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산 AB지구를 막았다는 것이다. 당시 선영에서 바라보면 AB지구가 있는 바다에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비쳤다고 한다. 이후 AB지구 제방을 쌓은 이후 대우의 성장세가 멈추고 하락세로 바뀌었다는 설이 전해내려 온다.

김우중 회장과의 특별한 인연을 전한 조규선 전 서산시장

서산시장을 지낸 조규선 한서대 대우교수도 특별기고를 통해‘대우 김우중 회장과의 인연’을 전해왔다. 조 전 시장이 전해온 기고글 속에는 인평리 주민들과의 인연도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조 전 시장이 전한 김 회장과의 인연을 소개하면 이렇다.

「그를 만난 것은 1980년대 새마을운동 활발히 하던 때였다. 그 당시 서산~당진 간 도로공사를 대우가 맡아 시공했다. 현장 K소장이 나를 찾아왔다. 김우중 회장님 모친이 상을 당했는데 장지가 태안 인평(인평리 2리)이라면서 현지를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대우 계열사 임원들이 나와 있었다. 큰 도로에서 장지까지 가는 통행이 문제였다. 농로가 비좁아 차량이 왕래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민들의 반대 기미도 보였다. 주차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마을이장을 비롯한 주민들과 협의를 시작했다. 제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할 터이니 저를 믿고 따라 달라고 했다. 먼저 도로 작업을 부탁했다. 모든 것이 조건 없는 봉사였다. 대신 이장님께서 경운기 동원 대수, 유류대, 참석한 주민의 이름과 시간, 일자등 상세한 기록을 주문했다. 그때 주민들은 이 의견에 따라주었다. 굉장히 고마웠다. 그리고 대우 소장에게 말했다. 도로작업을 우리 주민들이 할 터이니 석분을 준비 해달라고 했다. 이어 대우에서 나온 책임자에게 다음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농로에 승용차는 물론 영구차도 진입을 안 된다. 상여로 모시자! 교통이 혼잡하니 계열회사 대표만이 참석 하는 것으로 하고 버스를 이용하도록하자. 두번째, 주차장을 만들지 말자.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데 농민들이 공 드려 재배한 농작물을 훼손할 수 없다. 큰 도로에서 하차하고 버스가 일정 장소에 가 있다가 출발할 때 오면 된다. 셋째, 호텔의 도시락 준비 등은 안 된다. 위화감도 있고 하니 음식은 마을에서 준비하자. 이장 댁에서 마련한다. 이러한 요구에 동의했다. 장례식 날 주민들이 모두 참석 슬픔을 함께했다. 장례를 모신 김우중 회장은 매우 고마운 표정이었다. 이장 댁의 쌀밥과 찬은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했다.

비서에게 마을 주민들에게 섭섭하지 않게 비용을 전달했던 기억이 난다. 가묘를 써놓고 묘를 지키는 노인 산지기가 있었다. 김우중 회장의 집안 한 분이 산지기를 이장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 때 김우중 회장은 단호히 거절했다. 왜 산지기를 바꿉니까? 산지기에 산자기를 두면 됩니다. 그러면서 노인을 부르더니 고생이 많았다며 무엇을 도와주면 되느냐고 물었다. 평생 내 땅 갖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자 근처에 있는 토지를 사주라고 했다. 그리고 마을 이장에게 오늘의 고마움은 어떻게 하면 좋으냐 물었다. 이장은 아들이 군대갔다와 집에 있는데 회사 취직 시켜달라고 했다. 김 회장은 즉석에서 D개발 근무를 명함, 대리로 임한다고 했다. 이장이‘언제부터 근무 합니까’하니‘오늘부터 근무입니다. 이 버스로 함께 가도록 합시다’라고 했다. 이장은 아들을 불러 이불을 차에 싣고 간 기억이 생생했다. 묘지는 산 가운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인평 저수지가 보이는 명당터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대우에서는 나를 통해 서산군에 무언가를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군수는 받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그 후 다른 군수가 부임해서 부탁을 전달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당시를 회고하면서 조 전 시장은“김우중 회장을 만나 사람을 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면서“도움을 받는 기증 등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것, 지도자의 성격과 판단에 따라 지역의 발전이 좌우 된다는 것을 김우중 회장의 별세로 인해 그 당시를 회고 해본다”고 전했다.

김동이 기자 east3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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